이재용 집행유예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제1야당의 부끄러운 민낯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2월 둘째 주 정치권 안팎의 화두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었다. 평창 올림픽의 경우 9일 개막된 평창 올림픽을 최종 점검하는 과정에서 북한 예술단과 응원단 방남, 북한 고위급 대표단 파견에 이은 건군절 열병식까지 북한 이슈가 연일 언론을 장악했고 이 과정에서 여권은 ‘북한 대변인’이라는 야권의 따가운 질타를 들어야 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선 이 부회장이 구속 353일 만에 석방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여권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법위에 삼성, 상식밖에 법원’, ‘사법부 역사상 최대 오점’ 등 그야말로 분노를 쏟아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특별감사 및 파면 등을 요구하는 청원이 봇물을 이뤘다.


이처럼 이 부회장의 석방에 여권과 일부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던 상황에, 보수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제1야당은 ‘법원의 현명한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며 보기에 따라선 ‘삼성 대변인’으로 오해할 수 있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제1야당의 본분을 망각한 채 여전히 기득권을 대변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자유한국당에 대해 살펴봤다.


北 이슈 평창올림픽 도배‥대북제재 각개격파


李 석방에 ‘법 위에 삼성’…분노 여론 들끓어


지난 5일, 국회 대정부질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으로부터 “대한민국 장관이냐, 북한 대변인이냐”는 쓴 소리를 들었다.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으로부터 “북한 대변인 같다”는 뼈아픈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괄하는 국무총리와 총리를 뒷받침하는 장관이 야당 의원으로부터 ‘북한 대변인’이라는 쓴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문(愚問-어리석은 질문)’이다. 당연히 평창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 때문이었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 개막식 전날 무력을 과시하고 체제를 선전하는 건군절 열병식을 거행함에도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중지 요구나 항의할 계획이 일절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열병식은 북한은 내부적 수용에 따른 행사이고, 평창 올림픽을 겨냥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평창 올림픽과 열병식은 별개로 보는 게 타당하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구축하면서 북한이 정상 국가화 해나가는 과정에서 북한 나름대로 추진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등의 입장을 보였다.


이는 북한 측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는 대목이었다.


물론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 보면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어렵게 마련된 남북 화해 무드를 깨지 않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송월 방남부터 북한 예술단 및 응원단 방남, 북한 고위급 대표단 파견에 이은 건군절 열병식까지 북한 이슈가 연일 언론을 장악했고, 5·24 대북 제재 조치와 미국 독자 제재, 유엔 등 국제사회 대북 제재 등이 하나씩 각개격파 당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이 때문에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 무드 조성도 좋지만 우리 정부가 국제사회에 대북제재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 읍소하는 등 북한 김정은의 술책에 말려들어 너무 저자세로 끌려 다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야권 안팎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56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 참석한 국민의당 이언주(오른쪽) 의원이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정치·외교·통일·안보에 관한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핵·미사일 포기 않는 北…한반도 비핵화 가능?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우리 정부가 저자세를 보이며 북한 측 요구를 다 수용한다고 해서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 이 역시도 불투명하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9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인 화성-15형을 발사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바 있다. 이는 북한 스스로 ‘핵 보유국’임을 자임한 것이다.


지난 8일 열병식에서 IRBM(중장거리탄도미사일)인 화성-12형과 ICBM급인 화성-14형, 화성-15형 등의 실물을 공개한 것도 같은 이유다.


따라서 북한이 핵·미사일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북한을 향해 ‘핵미사일 포기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 한 마디 못하면서 건군절 열병식을 정당화하거나, 북한 측 의도대로 예외 조치를 적용해 대북제재를 하나씩 허물어나가다 보니, 북한 대변인이란 쓴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북한은 이번 평창 올림픽을 통해 김정은의 돈줄을 죄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를 깨뜨리고, 나아가 핵미사일 도발 중단을 대가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 및 중단(쌍중단)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즉, 북한은 핵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도발 중단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 해제 및 한미 연합훈련 축소·중단 요구 등 자신들의 실리만을 챙길 것이란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되고, 한·미·일 안보 공조는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민은 분노하는데, 경의를 표한다?


정부여당이 북한 대변인이란 쓴 소리를 듣는다면 정부여당의 국정운영 파트너인 제1야당은 ‘삼성 대변인’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 판결에 따라 이 부회장은 구속 353일 만에 가까스로 석방됐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여론은 들끓었다.


여권에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법위에 삼성, 상식밖에 법원’, ‘사법부 역사상 최대 오점’ 등 그야말로 분노를 쏟아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 대한 특별감사, 파면 등을 요구하는 청원이 봇물을 이뤘다.


특히, 정형식 부장판사에 대한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참여자는 사흘 만에 20만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이 부회장의 석방에 여권과 일부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던 상황에, 보수를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제1야당은 ‘법원의 현명한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며 보기에 따라선 ‘삼성 대변인’으로 착각할 수 있는 입장을 내놨다.


장제원 수석대변인 이날 이 부회장 항소심 판결 직후 논평을 통해 “법원의 현명한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묵시적 청탁이라는 억측과 예단으로 무리하게 혐의들을 끼워 맞추듯 만든 여론몰이 수사와 정치적 수사는 이 땅에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 수석대변인은 “경영일선에 있어야 할 기업인을 1년간 구속시키고,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특검이 이제 답해야 할 차례”라며 “법원은 지속적으로 정치적 외압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말고 법리와 증거, 그리고 양심에 따라 재판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것이 국민들이 바라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다운 나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준표 대표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 있게 판결한, 자유대한민국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항소심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라며 “지난 대선 때부터 말 세 마리로 억지로 엮어 삼성 부회장을 구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해왔다”라며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김진태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경의를 표한다”며 “축! 이재용 석방, 2심에서 대부분 무죄, 나머지는 집행유예, (이 부회장이)그동안 죄도 없이 고생했는데 오늘은 모처럼 집 밥 먹게 됐다”며 축하의 뜻을 전했다.


이와 같이 보수 대표를 자임하는 자유한국당은 듣기에 따라, 또 보는 이에 따라 ‘이재용 대변인’으로 읽혀질 수 있는 듯한 입장을 내놓았다. 마치 이 부회장이 대한민국 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에 대한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국민 10명 중 6명은 공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득권 논리에 젖어 있는 한국당‥서민 대변?


중도층 흡수 못해…보수 대표 자격 박탈 우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회자되는 이유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우리 국민들은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어느 정도 연관돼 있는지 모르지 않는다.


또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및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배정,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이 부회장이 그동안 편법을 동원해 후계자·경영권 승계 작업을 벌여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아울러 ‘장충기 문자’를 통해 삼성이 언론을 관리해 왔고, ‘삼성 장학생’을 통해 사법기관을 흔들어 왔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즉 ‘관리의 삼성’,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괜히 회자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삼성을 두고 일각에선 기득권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비난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해 1월 23일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대한민국을 바꾸려면 기득권과 싸워야 한다”며 “기득권의 핵심은 재벌이며, 그 중에서도 삼성”이라고 꼬집었다.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국민정서법만 놓고 보면 기득권 핵심의 수장인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판결에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정의도 중요…‘시대정신’


이 부회장이 실질적 수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 한 해 매출 239조 5800억원, 영업이익 53조 6500억원, 당기순이익 42조 1800억원 등 최고 실적을 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회장이 수감됐던 지난해 최고 매출을 기록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반도체, 가전 등 자랑스러울 정도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고, 삼성그룹 전체와 이에 따른 협력업체 및 파생 업체 등을 감안하면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하는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매번 경제 논리를 들어 대기업 오너 일가를 사면해주거나 특혜를 주는 등의 정경유착에 우리 국민들은 이제 진절머리를 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너무나 많은 사례를 통해 경험한 탓이다.


지난해 1월 16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및 위증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국가 경제 상황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히자, 국민들이 박수를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도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는 신보수 정당’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제1야당이 마치 ‘이재용 대변인’을 자청하는 듯한 입장을 내보인 것은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쯤 되면 한국당이 입으로는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한다고 말해도 결국 기득권 수구 보수세력의 본성을 버리지 못할 것이란 정치권 안팎의 편견은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 아니라 팩트에 가까워 보인다.


‘경의를 표한다’의 사전적 의미는 ‘존경한다’이다. 경의를 표한다는 한국당의 입장은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재판부의 결정을 우러러 받든다는 뜻이다.


한국당이 사법부가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법리로만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판단했다면,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는데 그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재용 대변인이란 비아냥을 듣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등 에게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정부 실책에도 외연 확장 한계 보이는 한국당


부동산·가상화폐(암호화폐)·최저임금 인상·방과후 영어수업 금지·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 혼선으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일제히 하락했을 당시 정치권 일각에선 이런 얘기가 나돌았다.


정책 실패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져도 한국당은 그 지지율 하락에 대한 반사이익을 고스란히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이는 차라리 어느 곳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으로 남았으면 남았지, 결코 한국당을 지지할 수는 없다는 여론이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다.


한국당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주홍글씨와 같은 ‘기득권=한국당=보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보수 대표 자격을 박탈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지난 6일 대전에 위치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방문한 뒤 현장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신당(바른미래당)이 의석수로는 열세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저는 한국당이 지방선거 이후에 절대로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당 혁신위가 탄핵 이후 세 번째 출범했음에도 진심으로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데는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구성원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보수를 대표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직격했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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