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에 간다고 인생의 역전이 일어나는가?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역전까지 가보는 ‘더’한 사랑이 그래도 역전에 미처 닿지도 못해 본 ‘덜’ 떨어진 사랑을 한 것 보다는 관계 맺기에선 차라리 낫다. 나는 이렇게 인생의 역전을 생각했다.관계/정채원뭉그러진 복숭아를 골라낸다저마다 단단한 씨앗을 아집처럼 품고도가슴 부빈 자리마다 단물이 흥건하다서로 밀착된 만큼 깊이 멍드는사이를 조금씩 벌려 놓는다너와 나 너무 가까워그 누구도 끼어 들지 못하는 사이나는 네 그늘에 가려너는 내 솜털가시에 찔려소리 없이 신음하고 있었으리라그 동안, 몇 번의
어쨌든 나는 강은교 시인의 좋은 시 「물길의 소리」에서 내 마음(以意)을 두들기는 그림 세 점이 펼쳐짐을 차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고백하자면 이 시에서, 가장 먼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 유명한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가 1875년에 그렸다는 명화 가 떠올랐다.물길의 소리/강은교그는 물소리는 물이 내리는 소리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렇군, 물소리는 물이돌에 부딪히는 소리, 물이 바위를 넘어가는 소리, 물이 바람에 항거하는 소리,물이 바삐 바삐 은빛 달을 앉히는
그림과 시를 잇는 나의 결론은 말하자면 이렇다. 김소형의 시에서 화자는 루소의 에 나오는 양들 옆에 하얀 모자, 파란치마의 소녀로 다가온다. 그림 속 소녀가 마치 관람자. 즉 독자를 향해 “꿈속이라 믿었던 숲이었습니다/어딜 가나 음악이고 어디서나 음성이던 숲”이라고 시를 낭송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착각되는 그림으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은 김소형의 시와 다름이나 또 닮음이다.시인의 ‘숲’과 화가의 ‘숲’으로 초대국내를 대표하는 시집 전문 출판사로는 누가 뭐래도 창비(창작과비평사)와 문지(문
사진의 기술이나 소설, 영화 등에서 예술성과 등장인물의 몰입을 높이기 위해서 종종 ‘트리밍 효과’를 기술적으로 사용한다. 다만 문제는 과(過)함에 있는 것이지 조금(寡)만 쓰면 나는 맛을 내는 양념이 된다고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트리밍 효과의 측면에서 새로 쓴 진은영의 「청혼」은 이전의 「청혼」과 전혀 다른 시적 묘사에 성공했다.청혼/진은영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웃는 것도 ‘나’이고, 우는 모습도 ‘나’인 것이다. 하물며 어떤 때는 내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는 세상이 우리가 지금 사는 자본주의 세상이고 또 그래서 모순에 따른 분인이 관계에서 절실해지니 한마디로 도심 속 생활이란 피로사회인 것이다.가을의 시/정희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가을은 얼마나 황홀한가황홀 속에 맞는 가을은잔고가 빈 통장처럼또한 얼마나 쓸쓸한가평생 달려왔지만 우리는아직 도착하지 못하였네가여운 내 사람아이 황홀과 쓸쓸함 속에그대와 나는 얼마나 오래세상에 머물 수 있을까“이 시는 낯선 단어나
우리들의 헤어짐엔 작별이 있고 이별이 있다. 생각하면 작별은 나의 의지로 이뤄진다. 그러니 하나도 억울할 게 없다. 하지만 이별은 다른 문제이다.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청천벽력의 날벼락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내 삶은 폐쇄되기 전에 두 번 닫혔다/에밀리 디킨스내 삶은 폐쇄되기 전에 두 번 닫혔다그러나 두고 볼 일.불멸이 나에게세번째 사건을 보여줄지는.내게 닥친 두 번의 일들처럼너무 거대하고,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절망적일지는.이별은 우리가 천국에 대해 아는 모든 것.그리고 지옥이 필요로 하는 것.작별이 아닌, 이별이러구
오랫동안 나만의 시간이 이어지는 기도발에는 사유(thinking)가 신선하게 창조되고, 의지(wanting)가 바위처럼 다져지며, 느낌(feeling)이 음악처럼 활발하게 태도로 생동하는 삼각형(△=人)의 안정된 그림, 그런 신비하고 영험한 힘이 존재한다. 하여, 오래된 기도가 인생 역전에선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그것을 내 친구는 마음이 아니라 노동하는 몸이 알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앞으로도 나는 사랑하고 또 존경할 것이다.오래된 기도/이문재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기도하는 것이다.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맞잡
아내와 가까운 친구에게 정호승의 「문득」을 활용하여, 문자메시지나 SMS를 50자 이내로 써볼 일이다. 아니면 문득 보고 싶어서, 라고 전화를 내가 먼저 해 볼 일이다.문득/정호승문득보고 싶어서전화했어요성산포 앞바다는 잘 있는지그때처럼수평선 위로당신하고걷고 싶었어요“지혜와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것. 나를 잘 아는, 내 편인, 그런 사람만이 나를 진정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378쪽 참조)문득보고 싶어서전화했어요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쓱쓱 바람처럼 다가와서 침음(沈吟)해도 좋을 한
시어로 쓰인 “저렇게”라는 부사가 돌올하다. 무려 두 번이나 시로 점령하고 등장한다. “이렇게”와 달리 “저렇게”는 물리적인 거리감을 부여한다. 상당한 심리적 간격도 유지한다. 또 “이렇게”라는 부사가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라면 “저렇게”라는 부사는 비자발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라고 분석할 수 있다.아흔아홉골 단풍/양진건아흔아홉 골단풍 보고 있자니아, 억장이 무너져나도언제 한번이라도 저렇게제 몸 온전히불사를 수나 있을지.저렇게비탈 구르며 달려 와제 몸 기꺼이내어줄 수나 있을지.찬란해라, 절정이여.서러움이여.“공간적인 차원에서의 위대함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현종의 또 다른 명시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에 보이는 ‘시 한 줄’이 이젠 남일 같지 않다.익어 떨어질 때까지/정현종기다린다, 익어 떨어질 때까지,만사가 익어 떨어질 때까지,(될성부른가)노래든 사람이든,무슨 작은 발성發聲이라도때가 올 때까지,(게으름 아닌가)익어떨어질때까지.“시는 하나의 세계이며 아울러 세계의 해석이다. 이때 해석의 격(格)과 깊이, 그것이 머금고 있는 인식의 지평선은 우리의 의식을 날카롭고 강하게 직격한다. 좋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직격의 메아리를 내부에 방목하는 것이다. 그
‘높이’는 수직상승의 출세에 대한 현재의 욕망을 간직한다. 하지만 이 간직은 양질의 전화로 ‘깊이‘로 사고(思考)가 전환되며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치는 미래의 자화상으로 간직된다. 이는 시적 주체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고통의 목소리, 이를테면 ’자성(自省)‘이라고 할 수 있다.속리산에서/나희덕가파른 비탈만이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산다는 일은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세속을 벗어나도세
연애의 감정이 최고조에 달하는 인생의 시기는 “꽃 같은” 서른 즈음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현실이기에 돈이 많이 필요하고 사귐의 정이 활발해져야 하는 시기이니 비유하자면 우정이 돈독해져야 하는 “잎 같은” 마흔으로 세워진다. 나머지 “뿌리 같은”은 나이가 오십이 되어야 비로소 바닥이 보이는 가족이라는 인연을 생각으로 강화한다.귀가 서럽다/이대흠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사랑했던가 아팠던가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지금은 다만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저녁은 빨
소나무의 줄임말은 ‘솔’ 이다. ‘솔’은 다른 의미에서 ‘솔(率)’의 위상을 바라본다. 이 한자는 가족을 부양하고 ‘거느리다’는 그런 뜻이고, 가장을 의미하는 ‘우두머리’라는 표현도 내포한다.아름다운 관계/박남준바위 위에 소나무가 저렇게 싱싱하다니사람들은 모르지 처음엔 이끼들도 살 수 없었어아무것도 키울 수 없던 불모의 바위였지작은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웠지만이내 말라버리고 말았어돌도 늙어야 품 안이 너른 법오랜 날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지그래 아름다운 일이란 때로 늙어갈 수 있기 때문이야흐르고 흘렀던가바람에 솔씨 하나 날아와 안겼
「가을 엽서」는 빈센트의 그림들과 썩 잘 어울린다. 그림 속 가로수길을 독자가 되어 어렴풋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혼자 걷는 외로움은 사라지고, 문득 나란히 둘이 걷는 낙엽이 쌓인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은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위안이 되고, 은 사랑하지만 생활은 가난한 부부에게 치유가 되리라고 짐작되며 기대된다.가을 엽서/안도현한 잎 두 잎 나뭇잎이낮은 곳으로자꾸 내려앉습니다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내가 가진 게 너무
김사인 시의 1연은 영화처럼, 또 뮤지컬처럼, 또한 그림처럼 술술술 읽힌다. 그런 점에서 시의 2연과 3연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 빛나는 김사인 시인의 위안과 독백으로 여겨진다. 영화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의 위험천만한 사랑을 나누기 위한 관계. 그 비밀스럽고 불륜일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만남도 어찌 보면 그들 인생을 찬란하게 물들였던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화양연화(花樣年華)/김사인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
우리에게 ‘기대’의 시간이 오려면, 반드시 나부터 타자를 그리워하고 기다려야하는 ‘대기’의 타이밍이 필수로 준비에서 갖춰져야 한다. 인생 노년에 이르러서 내가 만나는 지인들은 모두 “헤어지긴 쉬워도 만나보긴 어려”운 귀한 사람이니 어쩌겠는가. 친할수록 예의를 지키고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그리워해야 뒤늦게 뼈아픈 후회가 다소 적어질 듯하다.혼자 가는 먼집/허수경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살아옴의 상처에
‘나’에게 어제와 다른 오늘의 “새로 생긴 저녁”이 있다는 것은 참말로 기쁜 일이다. 내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남자라면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혜원의 그림처럼 그림 속 남자 서방이 되어 약한 여자(?)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결과론적으로 계집질하는 행위(끌림→쏠림→꼴림→흘림)로 이어지는 성적 폭력으로 변한다면 인간은 말종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 되기 때문이다.새로 생긴 저녁/장석남보고 싶어도 참는 것 손내밀고 싶어도그저 손으로 손가락들을 만지작이고 있는 것그런 게 바위도 되고바위 밑의 꽃도 되고 蘭도 되고 하는 걸까?아
18세기 조선의 그림, 화제(畵題)에서 ‘아회(雅會)’란 말이 더러 목격된다. 말의 뜻은 ‘아름다운 모임’을 주로 일컫는다. 다른 말로 ‘아집(雅集)’이 작품명에 간혹 대체된다. ‘회’가 정기적인 만남을 의미한다면, ‘집’은 오늘날 번개 모임에 해당하는 즉흥성을 내포한다. 이 점이 차별화되는 그 경계이다.아버지의 빈 밥상/고두현정독도서관 회화나무 가지 끝에 까치집 하나삼십 년 전에도 그랬지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토담집 까치둥지 어머니는 일하러 가고집에 남은 아버지 물메기국 끓이셨지겨우내 몸 말린 메기들 꼬득꼬득 맛 좋지만밍밍한 껍질
‘연인’을 ‘서로 돕는 두 사람’이라고 정의하자. ‘연인’이 ‘부부’가 되려면 서로 평소 일상에서 돕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인/원재훈그대의 손을 잡으면우리의 몸은 길이 된다그 길은너무 멀어서 갈 수 없을 것 같았던나와 너의 마음속으로 이어져 있다그대의 손을 잡으니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그대와 눈동자를 마주하면우리는 큰 창문 앞에 선다건너편 신성한 숲이 보이고여태 보지 못했던 별들이, 단 하나의 별만이 빛난다상처인 줄 알았던별의 슬픔이 환한 빛이 되어 내려온다그것 역시 길이다그대의 몸과 나의 몸이 겹쳐지면우리는 우주가 된다
그림 속 모델에게 달빛이 당신이라고 한다면, 밤늦도록 여름 달빛이 좋아서 하염없이 걷는다는 그녀는 그림 속 모델의 뒷모습과 많이 닮았다. 나의 여친, 당신! 지금도, 잘 지내고 계시지요?꽃길/유자효당신을 만난 것에 감사합니다함께 해온 시간들에 감사합니다당신을 만남으로서 탄생한 생명들에 감사합니다당신이 곁에 있어서 나의 눈이 트였고세상이 보였습니다밤길도 무섭지 않았습니다함께 걸어온 길은 꽃길가시밭길도 때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당신에 감사합니다앞으로 걸어갈 길도마지막 떠날 그 길도당신과 함께라면 언제나 꽃길멀리 있어도홀로 있